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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기도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님 (고후 8:9), 한근호 목사

by 많은 물소리 2024. 2. 6.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님 (고후 8:9)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님 (눅 4:18-19; 고후 8:9) 
하늘문교회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사역하기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해 오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이 삶의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음을 요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대로 실제로 사역하셨습니다. 네 권의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상처받은 자에게는 치유를, 눈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 중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가운데 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가난한 인간
1) 부요한 자로 지음 받은 인간
(창 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가장 영광스럽게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존귀하게 지어졌으며,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였습니다.
 
(창 1:28-29)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었을 때 사람의 지배자로 지었고 왕으로 만들어서 그의 생활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풍성하게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는 특별히 아름다운 처소, 낙원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는 에덴의 낙원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아담과 하와는 가난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가난한 환경 속에 살도록 내던지지도 않았습니다. 원래 인간은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가난하지 않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2) 타락으로 가난해진 인간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게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던 땅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저주의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헤치며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비극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이처럼 풍요로운 환경을 주셨건만 인간은 그만 타락함으로 풍요로운 환경을 박탈당하고 저주받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모든 부요함을 잃어버리고 가난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가난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요 형벌이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가난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형벌인 것입니다.
인류는 타락으로 인해 육체적, 생활적, 환경적인 면에서도 가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 공산주의는 영적인 가난으로 인해 경제적인 가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복음을 거절한 공산주의의 실상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는 70년 동안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반역한 소련이 어떻게 종말을 고하게 되었는지를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소련은 국가 전체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공산주의 사상에 묶여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저 북한 땅은 어떻습니까? 가난이 가져오는 처절한 절망을 보십시오. 헐벗음과 굶주림이 가져오는 파멸을 보십시오. 기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님 (고후 8:9)


2.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신 예수님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오신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란 무엇인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은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그들이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부자인가 가난한가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듣는 사람이 부요한 나라에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는 전혀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2)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게 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도우러 오셨습니다.
 
3) 예수님께서 가난의 저주를 담당하셔서 가난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셨습니다. 율법의 저주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복은 무엇입니까? 모세오경(율법)에서 하나님의 법을 어긴 저주는 세 가지 분야로 가난, 질병, 둘째 사망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물질적 재정적 복, 육체적 복, 영적 복입니다.
 
a) 율법의 저주는 가난입니다.
(신 28:15-18)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7절에 당신의 광주리와 그릇은 직설적으로 당신의 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광주리와 그릇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궁핍한 재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난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18절의 소생과 소산은 무언가 증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재정적인 증식 뿐 아니라 가족의 증식을 의미한다. 증식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곧 아무 증식이 없다는 뜻입니다. 가난은 분명히 저주입니다. 가난은 결단코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가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난에서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b) 율법의 저주는 질병입니다.
(신 28:21-22)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c) 율법의 저주는 패망입니다.  
(신 28:31-33) “네 소를 제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겨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원수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도와줄 자가 없을 것이며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네 토지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당신의 직업, 재산, 소유물을 다 빼앗기고 다시 찾을 방법이 없는 상태는 저주입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이러한 현상이 조금씩 눈에 띄고 있습니다. 유괴당하고 실종된 아이들에 관한 뉴스가 계속 보도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부모들은 아무 대책 없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수고한 것을 잃어버리고 소산을 잃어버리는 것과 자녀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같은 등급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 축복
(신 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4절에 새끼가 증식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소산을 증식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가져온 저주와 가난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저주와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저주를 친히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 심판을 받아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로 저주를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영육 간의 복을 가져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한 형벌로 임한 가난과 저주를 십자가에서 친히 담당하심으로 가난 대신에 축복을, 저주 대신에 아브라함의 형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가난과 저주의 포로가 되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고난을 통해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님 (고후 8:9)


3. 가난에 대한 거짓된 생각들을 새롭게 하라
1) 성도들은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정적으로 번영하는 것이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딤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악이 아닙니다. 악은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자가 돈을 사랑하는 악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동일하게 가난한 사람도 역시 돈을 사랑하는 악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이 축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가난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가난은 질병이 걸린 아이들을 치료해 보지도 못한 채 죽게 만듭니다. 가난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합니다. 가난은 파멸시킵니다. 가난은 도무지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요함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한다면 이는 분명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이 우리를 더 경건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난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난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난하게 삶으로써 어쨌든 더 경건하고 거룩해진다고 믿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제3국에서3 기아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거룩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뜻은 번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창조하신 이유는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고 번영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번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신 이유는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당하신 이유도 우리에게 있는 가난의 저주를 청산하시고 부요케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3) 말씀으로 생각을 새롭게 하라!
물론 가난에 찌들인 사람들 중에 온전한 복음을 들어본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쪼들리며 생계유지를 하며 살아야 한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가운데 머문다면 가난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수 믿어도 여전히 가난 가운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말씀대로 역사가 나타난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면, 그것은 역사한다. 만일 그들이 믿기만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도 그들의 빈곤을 풍요로 바꾸기에 충분한 재화가 숨겨져 있습니다. 만일 재화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그곳에 재화를 가져다주실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지속적으로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마음에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영혼이 잘 되듯이 번영할 것입니다. 당신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으면 당신도 형통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영혼이 잘되어야 당신의 재정이 번영한다고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영혼을 형통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4. 하나님께서 번영을 주시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번영하게 하시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재정적으로 번영하게 해 주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번영시키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번영을 주는 것은 구제를 위함입니다.
(엡 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부는 우리가 더 편리하고 더 사치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번영의 전적인 목적은 온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안락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를 번영시키시는 것이 아니다. 풍성한 재정의 목적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난한 자를 먹이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를 증가시켜서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일을 증가할 수 있게 해 주신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번영으로 가난한 자들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번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단지 당신의 배만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번영은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곧 다른 사람들의 영적, 혼적, 육체적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가 일하는 목적은 재산을 얻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다. 번영은 이 세상을 위한 축복이다.
 
당신의 이미지를 오늘 바꾸기 바란다. 당신이 인류에게 필요를 공급하는 사람이 된 것을 상상하기 바란다.
 
교회에서 번영에 관하여 설교할 때에 문제가 항상 있어 왔는데, 그것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번영을 오직 그들의 안락을 위하여 사용하여 왔습니다.. 어떤 부자들은 오직 부유하게 살기만 원할 뿐 그들의 재산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을 인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오직 편리와 사치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증식된 재산을 우리 자신을 위한 물질을 축적하는데 쓰는 대신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5. 어떻게 번성할 수 있는가?
1) 단지 구제하는 것을 뛰어넘어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어 그들이 가난을 이기고 부요해지게 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정부가 담당하도록 방관하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사람들이 가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를 전해 주어 그들이 가난을 벗어버리고 부요함을 경험하도록 하지 않고, 즉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을 해결하는 대신 임시방편으로 땜질해 왔습니다.. 만일 예수그리스도의 교회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과 거듭남에 대하여 가르친다면, 가난이 증가하는 대신 제거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복음 전체를 증거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복음은 그에게 장차 올 천국에 대한 희망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번영케 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그는 현재 이 땅에서 희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전함으로 다른 사람의 영, 혼, 육에 관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속하게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시는지 주의하여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여지리라.”
 
2)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번영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잘되게 하심(요한3서 2)과 우리의 주는 것(giving)을 통하여 우리를 번영시키신다.
(요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글을 쓴 저자는 영적인 것에 대하여 초보자가 아니다. 그는 예수님과 밤낮 함께 살며 함께 걷고 살았습니다. 말년에 그는 장차 올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어 계시록을 집필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랑의 사도 요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면 하나님의 복이 우리와 같이 있기 때문에 범사에도 잘 됩니다. 우리는 가난의 문제를 육체적인 방법이나 우리의 지식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됨에 따라 번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생활의 모든 근원이 영혼에 있으므로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한다.
 
3)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고를 그의 사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원하신다. 먼저 재정적으로 주는 것으로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항상 주는 삶을 살 것입니다. 주는 것이 삶에 지속적으로 자리 잡으면,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만일 당신이 주면 다시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면, 다시 말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돌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를 초자연적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형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고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필요를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의 눈을 자신에게서 떼어 다른 사람에게 두는 사람이다.
 

나가는 말

하나님께서 세상을 흔들고 계십니다.
(학 2:7-9)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a) 이 땅의 부는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b)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부를 흔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체제를 뒤흔들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축적한 재물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그러면 누구의 손으로 갈 것인가? (잠 28: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그 재산은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그 재산으로 많은 음식을 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부와 번영의 목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동행하라!
창세기 39:2-3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형통케(prosper)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신약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구절을 빌립보서 4:19절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을 그의 영광의 풍성에 따라 채우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떠한 나라나 어떠한 체제하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믿는 자들이 그것을 이미 증명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황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번영의 은혜를 누린 많은 간증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번영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번영할 수 있습니다. 이자율이 아무리 상승한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그로 인하여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번성할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해질 것입니다.
 
 
기도하기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모든 저주를 다 담당하심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붙들고 가난의 저주를 깨뜨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부요케 됨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부요함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저주받은 이 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부요함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께 돌아와 저주에서 자유케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