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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기도

느헤미야 _ 기도의 영을 가진 자가 기도의 짐을 질 수 있다.

by 많은 물소리 2024. 5. 17.

 

느헤미야 _ 기도의 영을 가진 자가 기도의 짐을 질 수 있다.


느헤미야 _ 기도의 영을 가진 자가 기도의 짐을 질 수 있다.
하늘문교회 한근호 목사



1. 우리에게는 영적인 일을 감당할 영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 수많은 난관을 만납니다.
 혹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 해내야 하는 수많은 과업들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는 우리가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일하셔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족 구원이 그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일을 감당할 영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즉, 기도할 힘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기도할 힘이 있는 것을 기도의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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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피니의 기도의 영 
 기도의 영
 피니는 초신자 때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많이 가졌다. 그는 아주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쳤고, 때로는 문자 그대로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는 자주 은밀히 며칠씩 금식하는 것이 아주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숲 속이나 교회나 자기만이 아는 곳에서 그것을 무척 즐겼다. 피니의 사역을 특징지었던 중요한 한 가지는 엄청난 ‘기도의 영’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 있는 사역의 비결이 전적으로 기도에 있다고 보았다. “나는 단 하루나 또는 단 한 시간이라도 은혜와 간구의 영을 잃으면 능력 있게 효과적으로 설교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개인적 대화를 통해 영혼을 구할 수도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불멸의 영혼들의 무게가 나를 눌러,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나는 날마다 시간마다 고뇌의 믿음 가운데 그러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 나는 어두움의 권세와의 투쟁을 위한 멍에를 메었으며, 하나님께서… 그 신생국에 더 큰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부흥회를 인도했던 서부 뉴욕주의 로마에 있었던 기도의 영에 대해 그는 이렇게 진술한다. “실로 그 마을은 기도로 꽉 차 있었다. 마을의 어디를 가든지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를 가다가 그리스도인 두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들은 기도했다. 만난 곳이 어디이건 기도했다. 회심하지 않은 죄인이 어디에 있건, 특별히 그가 부흥을 방해하는 사람이라면 두세 형제나 자매가 그를 특별히 기도제목으로 삼고 기도하고 있었다.”

 어느 신학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니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기독교에서 가장 어렵고도 드물게 얻어지는 것이 기도의 영입니다. 만일 당신이 기도의 영을 잃어버린다면 당신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천사의 지혜를 가졌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는 기도의 능력이 교육이나 신학적 지식 등 어떤 것보다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신이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아주 현명하지만 딱딱하게 되어 신학교를 졸업하고 기름부음도 없고 생명도 없으며 영성도 없이 사역에 뛰어들 것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생각할 때 나는 낙심에 빠져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칠 것입니다. ‘조심하시오! 책을 덮어 두고 기도하시오! … 아니면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서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피니는 기도의 영이 없어지면 그 즉시 사람은 세상적인 마음으로 가득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로서는 세상적인 마음을 가진 목사보다 더 추하고 가증스러운 존재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은밀한 기도의 시간을 자주 가지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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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 바운즈,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 당신의 기도의 불이 너무 약하다.
 원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 부으며 영혼을 불태우는 소원의 힘에 밀려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기도이다. 불타는 소원이 기도 안에 충만할 때 비로소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불은 너무 약하다. 기도의 가마솥이 전에는 펄펄 끓었지만, 이제는 약해져서 ‘점잖은 미지근함’으로 바뀌어버렸다. 영혼 속에 있는 거룩하고 뜨거운 불은 하늘의 관심을 끌게 된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장 5절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시편 145장 18절

 "나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마땅히 사모할 것을 갈망하게 하여 주옵소서. 제 안에 꺼지지 않은 뜨거운 ‘기도의 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뜨거운 마음을 품고 기도할 때 능력의 기도자가 될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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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여, 우리에게 기도의 불을 주옵소서! - 하늘문교회 한근호목사
 주여, 우리에게 기도의 불을 주옵소서!
 주여, 우리가 온 마음을 쏟으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안에 간절한 소원으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이루어져도 그만, 안 이루어져도 그만인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주여,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간절함으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의 기도의 원수는 냉랭함입니다.
 주여, 우리의 기도의 적은 현실에 만족함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도의 불을 끕니다. 우리의 기도의 열기가 식게 합니다.
 주여, 우리가 가난합니다. 
 주여, 우리가 배고픕니다.
 주여, 우리가 비천합니다. 
 주여, 우리로 부르짖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로 울부짖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기도의 불을 주옵소서!  



2.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2) 심령은 성령님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영은 성령님이십니다. 
슥12:10(KJV) ... the spirit of grace and of supplications:...
 하나님께서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신다고 하는데, 심령이라는 단어는 "성령"으로 번역됨이 마땅합니다.

 은총과 간구하는 영은 기도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기도의 영이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은 '은총과 간구의 영'으로 부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영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안에 전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또한 간구의 영을 부으실 것입니다. 간구라는 단어는 울부짖음이나 목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또 기도를 부어주십니다.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기도가 하고 싶어 집니다. 성령께서 기도의 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간구하는 영을 보내주신다. 
 <적용> 성령이 임하실 때마다, 이 두 가지 은총의 영과 간구의 영이 여전하게 나타납니다. 교회에는 늘 은총과 간구가 있었습니다.

 3) 기도는 기도의 영(靈)인 성령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슥12:10)
 기도는 내 머리와 이성(理性)으로는 힘 있게 하지 못한다. 기도는 기도의 영(靈)인 성령으로 해야 한다.

 4) 기도의 영 없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인간적인 힘으로 하려고 하면 기도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억지로 마음을 짜내야 간신히 몇 마디 기도가 나오는 가뭄 때에 고지대 수돗물 몇 방울 떨어지듯이 기도가 나오는 답답한 기도자인가? 마음으로는 기도하고 싶지만 말로 잘 표현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지 아니한가?

 기도의 영 없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기도할 수 없는 것은 기도의 영이 없거나 충만하지 않거나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신자라고 하는 이들이 자신의 영혼을 위해 행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성령이 그들 안에 계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라고 불리는 자가 만약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의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있다면 그에게는 성령이 소멸된 것입니다. 
 신자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기도에 힘쓰지 않고 있다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도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지 않음도, 그의 영혼이 깨어 있지 않음도 다 성령이 그들 안에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신자됨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신자의 능력과 힘은 오직 성령을 통하여서입니다. 성령을 충만이 받지 않는 자,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자는 삶의 문제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성령을 충만이 받지 않는 자,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자는  말씀으로 인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성령을 충만이 받지 않는 자,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자는 주님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찾으며 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성령의 충만이며 성령이 자신 안에 부어지기를 위하여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왜 성령을 주셨으며 왜 부어 주십니까? 왜 다른 것이 아닌 성령을 흘러넘치게 부어주셔야만 합니까?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자신 안에 부어지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영에 간절하고 진실한 소원이 되어 가지고 그것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터져 나와야 합니다. 이때 응답이 옵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지 못하는 적이 없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유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기도의 영을 구하라!
 여러분, 이 시간 주님을 부르시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기도의 영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기도의 영으로 임하시옵소서. 간구의 영으로 임하시옵소서. 나에게 기도의 영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간구의 영이 필요합니다. 

. 기도의 짐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이루시고자 할 때 기도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데 그 기도할 사람은 기도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려 하면, 엄청난 압박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기도의 영이 없으면, 아예 기도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절망합니다.
 기도를 시작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3. 기도는 가장 강력한 활동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다.
느 1:1-11

 비통함 없이, 금식 없이, 기도 없이, 깨어짐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벽은 결코 재건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적용> 나는 무엇 때문에 비통해하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우는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픕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아파하실 것을 보고 아파하는 것입니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그 성문

 1)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과 수치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궁이 있는 수산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예루살렘이 이웃의 공격을 받아 많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140년 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에 그러한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그렇게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지금 에스라에 의해 한참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에스라의 지도하에 말씀으로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던 시절입니다. 에스라와 유대인들이 외부인의 공격을 받아 그들이 애써 세운 것을 빼앗겼을 때 그들은 매우 낙담하였을 것입니다. 이루어진 귀환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귀환한 땅에 장엄한 성전은 커녕 무너진 성전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귀환한 땅에는 이방인들의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스 4:23)   

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느헤미야가 사용한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곤경’, ‘황폐’, ‘수치’ 이것이 바로 남 유다의 현실이며, 그들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실제적인 곤경이요 수치이기도 합니다. 성벽과 성문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주위의 대적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잡아먹힐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이런 무방비 상태인 이스라엘을 주변국들이 얕잡아 보고 비웃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곤경과 수치, 즉 조롱거리입니다.

 2)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슬퍼하다. 
 예루살렘에서 들려온 비보에 느헤미야는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지금 페르시아 제국의 최고 실력자 중에 한 명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누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대인들이 지금 고생을 하는 것은 느헤미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직접 듣자 앉아서 울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동족들의 고통을 알게 되자 깊은 연민으로 그의 감정은 격렬하게 끓어올랐습니다. 

 
 <적용>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픕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아파하실 것을 보고 아파하는 것입니까? 기뻐하고 있다면 왜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 자신의처지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향해 가지고 계실 마음 때문입니까? 신앙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우는가?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은 올림픽 결승전에서 승리해서 눈물을 흘리며 안타깝게 패배하게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그 성문들이 불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앉아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성과 그분의 백성들이 조롱거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혼 깊은 곳에서 고통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동족들의 고난에 마음이 무너졌으며, 자기 백성들의 죄악으로 번민했고, 이 모든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감정을 휘저어 그토록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나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근심에 휩싸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명성과 그분의 교회의 명성에 대한 깊은 열정이 있는가? 믿음으로 인해 핍박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가? 

3)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다.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제가 질문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경건한 사람을 두고 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의 비통한 심장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고 이미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요한 말을 하겠습니다. 저는 부르심에 대해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느헤미야처럼 이요.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것은 내가 담당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내게 주소서.'

 인간적인 수준의 비통함으로는 안 됩니다. 
 자칫하면 바리새인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도가운데 나아가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통함의 수준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모든 인간의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 앞에 제일 먼저 엎드렸습니다. 기도가 느헤미야의 습관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섣부른 말이나, 즉각적인 행동보다는 이 일을 어떻게 행할지 계획하며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만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음을 알고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전의 조서를 뒤집어야했고, 강력과 왕과의 호의적인 만남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교회 회복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약속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그 일을 위하여 기도로 소망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즉, 교회의 기도로 계획하신 일을 친히 이루십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일은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영광과 비전에 고무된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목적들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로 다시 향하고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했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경건한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 심오한 진리에 대한 비전을 갖도록 불을 붙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생각하고 그 진리로 돌아가도록 도전합니다. 

 하나님
1: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야훼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하나님 -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늘 인간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해 주십니다. 

 <기도하기> 위대하시고 경이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사랑의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종들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눈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은혜를 허락해 주십시오. 

 회개기도
1: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자신을 이스라엘과 철저히 동일시함으로 자신의 죄악과 자기 가족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느헤미야는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죄악의 위력을 충분히 인식하는 가운데 회개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죄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항상 문제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외부인의 공격으로 인하여 환난을 당하면 당장 이스라엘의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환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 대문이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적용> 우리의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정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깨끗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더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정결해야 합니다. 더욱 정결해야 합니다. 


3)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2:17)고 설득했습니다.
 <복음해설> 성벽을 재건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인생을 세워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온 유다총독이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신다고 한다(사 26:1). 즉, 성벽은 그 백성들을 보호하는 구원이다. 따라서 성벽재건을 위해 온 느헤미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개혁을 위해 이 땅에 오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오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이 처음 만난 백성들은 느헤미야시대의 백성들처럼 부패한 이들이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성벽(구원)을 재건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성벽을 재건하실 때도 온갖 방해와 반대, 유혹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을 거뜬히 이겨내셨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요청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한 이들은 부분적으로 타락할지언정 완전히 타락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개혁은 느헤미야와는 다르게 완전한 개혁이기 때문이다. “제사장 에스라와 제사장이 아닌 느헤미야의 무력함은 열두 지파로 구성된 새 백성의 위대한 제사장이시며 왕이신 분의(예수 그리스도) 능력으로 극복된다.”(반더발, 555) 이처럼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거룩한 성을 튼튼한 요새로 바꿀 수 있는 구속자를 어떻게 불러일으키시는가를 말해준다.”(반더발, 543)
참고: C.반더발, 『반더발 성경연구』, 543-555.

 
여러분이 비통함의 세례 없이 시도하는 어떤 것도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녹이고 깨어지도록 허락할 때,
주님과 마음을 나눌 때,
그 경험으로부터 하나님이 부르신 대로 비통함 가운데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다.
요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께서 슬픔 가운데 묻혀 있는 마리아와 마리아의 친구들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33)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5)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토록 강하고 위대하시며 지혜로우신 분, 온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오 영원하신 분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두 볼 가득히 눈물을 흘리시며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그를 위해 예비해 두신 하늘나라 본향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나사로가 천국에 있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살펴보지 않겠지만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조만간 만천하에 나타내 보이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흐느껴 우셨습니다. 이 말씀이 놀라운 것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나사로의 가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를 너무 사랑하셨기에 그들이 흘리는 눈물에 동참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인간을 향한 동정심으로 가득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딱딱하거나 무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가장 부드러우시며, 인간을 향해 섬세하시고, 특별히 인간을 향한 동정심으로 충만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죄로 인해 괴로워하며 여러 가지 삶의 문제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준 슬픔과 아픔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당신이 홀로 흘리는 눈물을 인해,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얼굴을 적시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나사로 가정의 눈물 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사람들의 눈물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히브리 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히 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공동번역 히 4:15)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표준새번역 히 4: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눈물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십시다. 주님이 우리의 눈물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느헤미야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그렇게 환난과 능욕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위로하신다.'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느헤미야의 이름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느헤미야를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셨고 그들이 외부의 공격에 의해 고생하지 않도록 예루살렘의 성벽을 세워주시기 위해 느헤미야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 사건 안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파하는 느헤미야가 있었고 느헤미야의 슬픔과 기도는 결국 느헤미야가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과정이 됩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재건되는 과정의 시작이 됩니다. 그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함께 가지고 있는 느헤미야가 있었습니다. 
 <적용> 
 우리도 살다보면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이름의 뜻대로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환난 중에 절망하기보다는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정직하게 서 있다면 그 안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그 마음 전부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상황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르더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야 합니다.